금요일은 언제나 학교에 안간다. 01학번인 집앞 제일은행 여직원도 기억하고 있는 주4파! 주말에 일을 해서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나는 쉬는 날을 맞이하야 청소와 빨래를 열심히(정말로) 한다. 세탁기를 세번쯤 돌렸을 때, 통에서 후디를 꺼냈는데 뭔가 툭-하고 하얀 게 떨어진다. 빨래를 다 해놔서 부러울 게 없던 지라 가볍게 내려봤다.
이거 뭥..........아, ㅆㅂ.
그래, 어제 입은 옷에 아이팟을 넣어두고서 확인할 생각을 안하고 그냥 세탁기에 넣었나 보다. 올해가 삼재든 해라더니 그냥 지나가질 않는 구나. 탈수가 막 끝나서 겉면이 말끔한 아이팟을 멍청하게 또 켜본다. 당연히 켜질리가 없지.
잉크 충전하러 나가면서 애플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봤다. 상담원 언니 말로는
hold 버튼 비껴놓아서 버튼 눌리지 않도록 하시고, 드라이어로 잘 말려준 다음에 2~3일 후에 다시 켜보세요.
그래도 안되시면 저희 서비스 센터로 가셔야 해요. 저희는 수리를 해드리는 게 아니라 세제품으로 교환을 해드리기 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랬다.
근 데 내 방엔 드라이어도 없고, 아이팟 또한 군대 있을 떄 산 거라 애플케어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고, 전역 후에도 케어를 갱신할 생각도 없었기에 '06년에 산 아이팟은 이제 두 돌을 갓 넘긴 상태. 생각해보면 면역력 없는 갓난 아기를 싹 벗겨서 거리에 내놓은 격이었다.
케어가 없으니 리퍼를 받을 수도 없는 상태, 맥북을 사면서 같이 산 셔플은 친구의 전역선물로 정해놨고, 이제 와서 클래식을 사기엔 또 웃기단 말야. 분명이 9월에 신제품 나올 건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닫힌 잉크집 문 너머를 살펴보았다. 세탁했던 나노는 아직 배터리도 그닥 줄지 않아서 꽤 오래 쓸 수 있을줄 알았다. 대용량 스토리지가 필요했기에 어차피 클래식을 살 계획이었으나 클래식이 생겨도 나노는 또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키플러스라던지, 가벼운 외출이라던지... 그러니 이 시점에서 아이팟이 고장났다는 게 상당히 애매했다.
결국엔 이걸 고치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살아야하는 상태다 -_- 내가 노트북을 왜 샀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솔샘터널을 바라보면서 담배만 계속 꺼낸다.
자초지종을 하소연삼아 여기저기에 했더니 친구 A씨(25, 치바현 거주)는 이런 말을 해줬다.
에탄올을 사다 담궈놓아봐. 알콜이 빨리 증발되니까 물기가 마르는 것을 도와줄 거야.
안했다. -_-
인간적으로 학교와 내 방 모두 약국과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대신에 티비나 모니터 위에 올려두는 등 최대한 열받기 좋은 곳으로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금요일로부터 3~4일은 지난 것 같았을 때 다시 켜봤다.
안켜진다. OTL
이거 뭐 어쩔.......
에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맘으로 아이팟이 책상에서 떨어지든 어쩌든 그냥 두고 또 며칠을 보냈다.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들었지만 4호선에서는 오덕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리면서 방금 꺼낸 노트북을 째려보았고, 1500-2번 버스에서는 메쉬캡을 가방 손잡이에 묶어두고 그냥 잤다. 워낙 들고 다니는 게 많아서 주머니가 가득 찼었는데 아이팟 하나가 빠지면서 주머니 걱정이 하나 줄기도 했다. 후디를 못입으면서 상의에 있는 주머니가 잔뜩 없어지는 것을 다소 덜 불편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가방 없이 외출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두번째 금요일을 맞았다. 시험기간이지만 더운 날씨에 동사무소 위 도서관과 이문동 도서관을 나다녀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집으로 돌아와 놀았다. (......) 미래를 희생해서 만든 여유는 평소라면 떠올리기 힘든 호기심을 돋구었고, '아이팟 침수'로 검색해봤다. 여러 블로그들에 올라온 글들을 보고 아- 역시 애새끼가 물가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의 부모 마음이 이런 거구나 느낄 수 있었다.
죽은 아이 귀 만지는 기분이지만 구글링 중에 침수된 나노가 휠이나 버튼은 안눌렸지만 데이터는 복구할 수 있었다는 글을 보고 혹시해서 usb 케이블을 찾아 연결해봤다.
얼레? 불 들어오네?
휠도 돌아가네?
뭐야 이거....
방전됐었나보다. ㄱ-
결국 방법이 어찌됐든 침수된 아이팟은 회생했다. 지난 일주일간의 등하교시간이 허망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mp3 새로 얻은 기분이다. 한때는 선물로 주기로 약속한 셔플까지 먹으려고 했던 막장 사건이 이렇게 훈훈하게 끝났다. 역시 삼재는 별 것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