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 듣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0/04/21 Stop the sag 캠페인; 다양성과 관용 (6)
  2. 2010/04/13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문제
  3. 2009/12/17 트리뷰트 투 신중현 (8)
  4. 2009/06/27 책 읽기 (8)
  5. 2009/06/26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6)

뉴욕주 상원 의원, 에릭 아담스(Eric Adams)가 선거 자금 2000 달러를 써서 'Stop the sag'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바지를 내려 입지 말자'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 하다. 젊은 사람들이 큰 바지를 내려 입기 시작한 데에는 어디 하나 확답을 주는 곳이 없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첫째론 교도소에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지급받아도 (자살 등의 사고를 우려하여) 벨트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두 번째로는 손윗 형제에게 큰 옷을 물려 입고 다녀서 은연중에 내게는 나이 많은 형들이 있으니 건들지 말아라는 묵언의 거들먹거림이었다. 이 두 가지가 근 10 년 남짓 바지 내려 입고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 어느 것도 정확하다고 확답하진 못하겠다. 
경찰 출신의 흑인 국회의원이 진행하는 캠페인이란 점을 따져 보면 엘리트 계층에 있는 성공한 흑인이 그렇지 못한 계층을 계몽하려는 목적이 크고, 유튜브에 올라온 홍보 동영상에 나오는 청년들의 과반수 이상이 흑인이니 미루어 짐작해볼 때 유권자층(아마도 바지를 내려 입는 청년들의 부모가 되지 않을까.)을 다분히 의식한 캠페인이다.

캠페인에 대한 반대하진 않는다. 아무리 다인종국가라고 하더라도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하위 계층을 점하고 있는 것이 선입견이다 싶을 정도로 당연했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흑인에게는 어쩌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90년대가 아니라서 XXL 사이즈의 옷을 입는 것은 유행에 뒤쳐진 축에 속하는지라 홍보 영상에서 This is not fashion trend가 아니라고 했던 것을 오롯히 수긍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인 복식예절에 맞지 않다면 고치는 게 옳다. 바지를 내려 입는 것에 정도를 운운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우스워 보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저렇게 입고 다니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말했듯이 '90년대가 아니잖아.

다만, 뉴스를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선은 다소 내려다 보는 입장이라 아쉽다. 캠페인에 찬성하면서 동영상에 나온 청년들을 힐난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여자, 나머지는 어른이다. 여자들은 저런 모습의 남자에게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 쪽은 어렸을 때나 하지 언제 하냐며 다그친다. 
각각의 호오를 이해한다쳐도 너무 매도당하는 느낌이다. 소수문화, 하위문화 따위는 개나 줘버리란 듯 몰이해의 테두리내에 있다. 이해받지 못하는 문화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벌써 2010년인데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90년대에 머물러 있고, 덕분에 몇몇은 '90년대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지 뭐.

유튜브에 올라온 캠페인 홍보 영상


로이터 통신 취재 영상, Men urged to pull up their pants



* 관련 링크
???, 뉴욕에 "'똥싼 바지' 그만" 광고판, 연합뉴스, 2010. 4. 2.
한솔로, 섀기 팬츠(saggy pants), 세월이 약, Soulounge, 2010. 4. 9. 
Steffie312, 이해안되는 미국남자들 유행 옷차림. Saggy pants, My Life In New York, 201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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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각보다 큰 문제를 맞아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쌔빠지게 움직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 일이 다 그렇다. 그래, 사람 사이의 일이라 더 그랬다. 술은 생각을 늘여뜨려주었지만 손을 잡아주진 못했고 몇 년 전 끊은 담배까지 생각났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친구를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에 있는 이야길 털어놓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도 친구는 차분히 이야길 들어줬고, 그나마 나은 방향을 알려주었다. (물론, 새파랗게 어렸던 그들의 결론은 차선이기보다는 차악에 가까웠다.) 그는 친구가 앉아있는 자리가 고마웠다. 조금은 따뜻해진 것도 같았다. 그 친구는 이미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작은 위로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돈 한 푼 들지 않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그런 말들 말이다.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기는 이미 익숙해진 뒤라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는 그의 대답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더 차가웁게 다가왔다. 피차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어찌할 수도 없었던 그는 친구의 처지를 내심 위로하곤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었다. 그에겐 큰 문제일지 몰라도 다른 이에겐 문제가 문제로 보이질 않을련지도 모른다. 막막한 기분에 따른 술잔은 넘쳐 흘러도 바닥이 훤히 보였지만 그는 왠지 눈 앞이 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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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하게 생각되서 놀랍지도 않네.


* 사진은 최규성의 문화산책에서 가져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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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2009/06/27 01:16 from 흘려 듣는 이야기
일주일 전에 딸기뿡이로부터 '나의 독서론'이란 릴레이를 받았다. 근데 뭐라고 써야 할지 막막하다. 생각해보니 꽤 오랫동안 책을 안 읽었잖아? (잡지와 만화 등을 독서에 넣진 말자.) 릴레이를 깨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입에 침 바르고도 거짓말을 못하겠네.

아직 한글 깨우치려면 까마득하게 멀어서 그런지 '~론' 접미사를 쓰는 낱말을 볼 때마다 정신적인 경기를 일으킨다. 유물론, 방법론 따위를 마주칠 때마다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곤란해하는데 - 시발 한글인데 해석까지 해야 해! - 그래도 알고 넘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문장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애처로울 따름이다. 수 년 전부터 독서와 독해를 구분하지 못하고 글 읽는 게 한창 익숙하던 초, 중학생 때답지 않은 데다가 '난독증'이란 낱말을 인터넷에서 자주 보게 되니 혹시 나도 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책을 고르는 취향도 상당히 좁아져서 실용서는 그저 실용서라고 읽지 않고, 유명한 책들은 어렵다고 읽지 않는다. 마치 죄와 벌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름이 너무 길어서 읽기를 포기했다는 변명을 아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서 주로 소설을 찾곤 하는데 정작 내가 쓰는 건 수필에 가까우니 이건 뭔 지랄인지.

독서의 사전적 의미인 '책을 읽음'에 비춰보았을 때, 글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책에 한정되지 않는 작금에는 사람들이 말하는 독서론을 정의하는 것은 다소 아날로그스럽다. 아날로그스럽다는 의미는 대체로 일상적이지 않다는 말과 같은 뉘앙스를 가지는데,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 등의 비인쇄 매체를 통해 수많은 글을 읽지만 그 것이 독서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딴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 장난을 이어가다 보면 나는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것이고, 최근의 독서랍시고 했던 걸 생각해보면 독서라는 말을 하기엔 이건 뭔가 낮게 땅에 닿을 것 같게 슬퍼져서 안구에 습기가 차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를 뿐이다.

그래,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내가 독서론을 이야기하는 사실이 상당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읽다가 짜증나서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아직 어려움이 없는 나이라서 독서든 글(text)을 읽는 것이든 읽은 만큼 더 성장한다. 이는 다시 글을 쓰거나 내가 말을 하는데 모두 유효하게 작용해서 '읽기'가 내게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데엔 어떤 식으로든 반대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글 쓰는 방식이 독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인터넷이 없으면 안되는 세대답게 속담보다는 인터넷 은어와 속어에 익숙하며 한글보다는 영어 수식어구를 자주 쓰는 전형적인 20대기에 보는 만큼만 쓰게 된다. 반대로 지금 내가 쓰는 표현방식은 절대로 책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다고 자랑스러운듯 목을 빳빳히 세울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구어체의 한계는 (지금으로썬) 명백하다.

게으름뱅이는 알고도 행하지 못한다. 서적 구입이 가장 용이한 시대에 가장 질 좋은 서적이 출판되는 몇 안되는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책에 관해서 이런 이야기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역시나 게으름뱅이는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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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는 와중에 인터넷을 켜보니 역시 안 좋은 소식부터 눈에 띈다.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린지... 이렇게 또 아까운 사람이 가버리는구나.

자잘한 것은 모두 차치해놓고서 늦게나마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당분간은 좀 더 듣고 있을게요. 먼 곳에서나마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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