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FS

구안와사_초기_증상.jpg

제목을 쓰는 건 역시나 귀찮다. 훈련소에서 편지 쓸 때 XX에게... 라고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처럼 으레 해야 하는데 이건 뭐 해놓고도 시원찮지. 제목 잡고 쓰자니 키보드 두드릴 꺼리가 떨어지고, 제목 없이 써놓고 보면 이거 뭐 흰 건 배경이고 검은 건 글씨가 맞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니 진퇴양난이다.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그 걸 치워놓고 다음 판으로 넘어가보자고 생각해서 제목을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그렇다고 남들이 보기 힘들게 똑같은 것만 늘어놓거나, 무성의한 특수문자로 스브적 넘어가긴 싫어서 변명꺼리로 쓰려고 시리즈를 만들었다. 숫자가 늘어나면 천원 주고 산 형광색 돼지 저금통에 얇은 동전이 쌓이듯 보이지 않는 성취감도 채워질 것 같기도 했고, 물론 그보다 먼저 싸이월드 다이어리보다는 뭔가 있어보일 거라고 자신했다. 흐흐

밖에서 이야기하나 키보드로 타이핑하나 큰 차이가 없어서  TBFS에서의 '이야기'는 글보다는 말에 가깝다.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해서 밖에선 숨차고 입 말라서 못할 이야길 여기서 이어 나간다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하도 심심해서 그동안 써놨던 글을 되돌아 보면서 딱히 나쁘지 않다고 자평했다. 물론 2년 전에 쓴 글은 같은 아이디로 공개하기 부끄러울 정도지만 그 차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 크다. 글도, 말도, 섹스도 하면 할수록 는다. 역시 요새 아쉬울 게 없드라.
세상이 흉흉하고 다른 사람도 세상이 흉흉한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상대방 얼굴을 보고 시작하지 않은 인간관계를 그리 신뢰하진 않았지만, 그런 선입견을 시나브로 무너뜨릴 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더 만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결국 어떻게 만나느냐 보다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한 거였으니까.

두자리 숫자까지는 어떻게 띄어쓰기 검색해봐서 써왔지만 세자리 숫자는 좀 힘들 것 같아서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야겠다. 전투복을 입었던 기간보다 이 시리즈를 끌어온 기간이 손톱만큼 더 길다. 그만큼 더 자랐을 거다. 그래도 183cm인 사람들 옆에선 한없이 작아지니 저만치 미뤄뒀던 맞춤법을 끝내고 받아쓰기 100점을 맞으면 다음 단원인 띄어쓰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쉼표와 마침표의 사용 단원까지 마치면 어디가서 까막눈 소리는 듣지 않을 자신이 생길 것 같다.

블로그는 한번에 오롯이 바뀌진 않겠지만 자잘한 것부터 바꿔갈 예정이다. 늘 그랬지만 다음부터는 더 재밌는 걸 들려줄게.


사족삼아...


TAG
Posted by CIDD 트랙백 0 : 댓글 10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충남대 기고문 쓴 김용민입니다.

두 번째 링크는 2차 출처로 듀나의 영화낙서판인데, 리플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을 읽은 20대의 반응은 한결같다. 너네가 해준 게 뭐 있다고 희망을 접냐. 10대가 과연 우리보다 잘 될 수 있을 것 같냐,로 시작해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대답이 대부분. 이 말도 틀린 것은 아닌 게 30대까지는 적어도 90년대 YS 정권에서 데모를 통해 정권에 항의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20대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 10대 후반과 20대 초중반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격한 의사 표시를 할 필요가 적은 게 사실이다. 나 같은 사람처럼 슨상님이니까 일단 믿어보자는 무지함도 크고...

어느 시대든 장애물은 있었고, 지금까지의 20대들에게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 패시브 스킬로 장착되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현재의 20대의 조로는 이상하리만큼 신기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이해찬 1세대, 2세대나 사춘기에 IMF를 겪은 것, 최근의 88만원 세대 등 '00년대의 20대만 존나 고생한 점이 면책사유가 될 수도 있고.

하지만 김용민이 말한 '부채의식' 혹은 죄책감 자체가 전혀 없는 우리 세대는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해야 될까.

자기를 되돌아 보지 않는 미래투자는 내가 봐도 위험하다. 30대가 핑계를 만들던, 10대가 촛불 소년소녀 세대로 거듭나건 상관없어. 다만 나는 20대가 지적 받는 개인주의로 나 자신을 더 걱정하게 된다. '난 안될 거야 아마' 등의 인터넷 '병맛' 문화로 시ㅋ망ㅋ하고 나서는 내가 늘 해오던 대로 시급 4천원만 준다고 투덜대던가 일본처럼 NEET가 되는 길 밖에 더 있을까? 차라리 현실도피로 이민을 가던지 유학을 가는 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아, 난 돈이 없어서 여권도 안 만들었지.

대학 교육을 받건 받지 못했건, 돈이 많건 적건, 한국이라는 진흙탕에서 뒹구르면서 살아남으려면 역시나 20대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뭐지? 이 나이엔 뭘 해야 20대와 빠이빠이했을 때에 후회하지 않을까.




Posted by CIDD 트랙백 0 : 댓글 6
티스토리에서는 회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방문자수를 뻥튀기한다는 이야기가 암암리까지는 아니고 그냥 대놓고 나오고 있다. 이글루스도 근 3~4년을 했는데 여지껏 그런 소문을 듣지 못한 거면 아, 내가 친구가 없는 거구나. 여하튼, 인터넷을 통한 왕래가 조금씩 번져갈 즈음에 내 블로그에는 내가 밖에서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는데, 그 숫자는 나같은 소시민이 감당하기 힘겨운 숫자였다. 업데이트가 없는 곳인데도 하루에 기백명이 들어오는 걸 보고 기가 찼다. 티스토리는 유입자 통계 또한 부실한지라 어디서 누가 왔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터라, 한국 어디엔가 살고 있는데 이름이 어노니마우스인 사람들이 너무 들이닥쳐서 사실 좀 난감했다. 한편으론 30분마다 늘어나는 방문자 수를 볼 때마다 흐뭇해하면서 우쭐하긴 했지만, 조만간 로또 1등에 당첨될 예정인데 이거 너무 사생활을 노출시켜 놓으면 나중에 돈을 갖고 튈 때 무척 부담이 될 것 같다. 아참, 싸이 막아 둔다는 것도 깜빡했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 말고도 약간의 변화가 필요한 상태다.
Posted by CIDD 트랙백 0 : 댓글 14
A와 만나면 꼭 공부에 관련된 이야길 한다. B와는 음악이나 여타 (소비)문화에 관련된 이야기. A에게도, B에게도 나는 언젠가 어떠어떠한 걸 할 거다, 살 거다, 이룰 거다 말을 한다. 사는 게 힘든 건지 게으른 건지 모르겠지만 6개월, 혹은 1년 만에 만난 A와 B는 그때를 회상하며 내게 묻는다.

그때 말했던 건?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오빠들 보면서 가슴 벌렁벌렁이는 여중생도 아니고 나는 책임지지도 못할 희망을 언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뿌려놓았는지 크지도 않은 몸뚱아리를 숨길 쥐구멍을 찾지도 못해서 애써 태연한 척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중에 생각해본다. 뭐하다가 소홀해졌을까. 몇 가지는 시간이 걸려도 하고, 사고, 이루긴 했다만 늘어놓은 말들을 주워담으려면 참 바쁘겠다. 뭐부터 해야 할까.
Posted by CIDD 트랙백 0 : 댓글 8
근 2년 만에 다시 콘택트 렌즈를 끼고 나온 날, 자꾸 손이 오른쪽 눈썹에 부딪히고, 가운데 손가락이 미간에서 미끄러진다. 손가락에 플라스틱이 닿는 느낌이 없자 갑자기 눈 앞도 흐려졌다. 거울 안에서 반사되어 보이는, 안경이 없는 내 얼굴도 어색하긴 마찬가지. 렌즈를 끼고 있었지만 안경 없이는 못 살던 여느 때처럼 마음이 불안하다. 지하철과 거리가 여전히 북적대도 아무 것도 보이니 않으니 사람들 속에 있다기 보단 하나의 커다란 벽이 날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흐릿해서 더 익숙하지 않은 바깥은 낯선 만큼 더 어두웠다. 두려움에 하릴없이 서 있다가 질끈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니 그제서야 햇볕이 미지근해지고 암전된 거리가 점차 밝아졌다.
Posted by CIDD 트랙백 0 : 댓글 8